1-2. 젠더역할의 사회와의 갈등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배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물학적 남성, 여성에게 각기 젠더가 내면화되는지, 그로 인해 어떤 갈등을 겪을 수 있을지 알아보자.
<참고자료 - 세메냐와 순다라얀, 생물학적 성 구분의 '회색지대'> 2009년 베를릴세계육상선수권 대회 800m 우승자인 남아공의 캐스터 세메냐가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양성자로 밝혀졌다고 한다. 결국 10년 전에 비인간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되었던 성판별 검사가 되살아나 버렸다. 앞으로 육상경기 출전이 금지되고 자칫하면 어렵게 받은 금메달도 박탈당하게 될 모양이다. 우리는 흔히 남자와 여자가 검은 것과 흰 것처럼 언제나 확실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생물학적 성의 구분에서도 어쩔 수 없는 회색 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정말 애매한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세메냐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단단한 상체 근육을 제외하면 겉으로는 완벽한 여성이다. 그러나 해부학적으로는 심각한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적인 여성이 가지고 있는 자궁과 난소가 없는 대신 남성에게서 볼 수 있는 고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애매한 경우도 있다. 해부학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체세포의 핵에 들어있는 성염색체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을수도 있다. 한 쌍으로 구성된 보통사람의 성염색체와는 달리 XXX또는 YYY처럼 잘못된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받았던 인도의 산티 순다라얀이 그랬다. 그런 선천적인 기형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다. 선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장애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체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선수들을 탓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런 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모두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한 성판별 검사가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천성 장애 덕에 뛰어난 기록을 내는 선수들을 무작정 용납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칫하면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여자 선수들의 기록이 영원히 퇴색되어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출처: 디지털 타임즈) |
1-2-1. 젠더역할의 사회화
젠더역할의 사회화는 흔히 사회학습이론의 관점에서 설명된다. 젠더역할은 다름 사람의 젠더행동이나 상황을 관찰하거나 모방한 결과 학습된다는 것이다. 이는 보상과 처벌의 기제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아동은 부모를 비롯한 중요타자들로부터 각자의 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기대를 받는 반면,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경우 처벌을 받는다. 가령 부모들은 여아에게 인형이나 장신구를 사주고, 여아가 이를 가지고 조신하게 놀면 기뻐하고 칭찬함으로써 아이의 행동에 보상을 준다.
반대로, 여아가 밖에서 거친 장난을 하고, 남아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면 부모들은 이를 꾸짖음으로써 처벌을 내린다. 즉 남성과 여성은 어릴 때부터 주위의 태도, 기대되는 행동 양식, 주어지는 도구 및 놀이의 유형을 통해 이미 그 사회가 구축한 젠더역할을 수행하도록 사회화된다.(Leonard)
1-2-2. 젠더역할의 분극화
젠더역할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남녀의 역할은 기존의 질서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가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의 주관자로서 기대되는 반면 여성은 사적 영역에서 아내, 어머니, 주부로서 보조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기대된다.
따라서 남성성은 공격성, 독립성, 활동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반면, 여성성은 의존성, 감성, 수동성 등에 한정된다. 이는 남녀의 직업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여성이 교직, 간호직, 사무직 등 비활동적, 소극적 직업에 주로 진출하는 반면 남성은 이런 직업을 등한시하거나 이런 직종 내에서 관리직(교장, 의사, 경영자 등)을 차지함으로써 젠더역할을 지속한다.
1-2-3. 젠더역할 갈등
역할갈등은 역할모순과 역할긴장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 둘은 모두 지위에 따라 기대되는 행동 간의 충돌을 가리키지만, 각기 다른 상황을 전제로 한다. 먼저, 역할긴장은 하나의 지위에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역할 기대들이 부과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로 역할 내 갈등이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어 프로농구팀의 감독은 선수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구단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구단에서 요구하는 규율과 질서를 선수들에게 강요해야 할 때도 있다. 즉, 감독이라는 하나의 지위에 대한 선수들과 구단의 서로 다른 역할 기대 간의 충돌을 말한다.
역할모순은 한 사람이 둘 또는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을 때 이에 따른 역할들이 서로 갈등하는 경우로 역할 간 갈등이라고도 부른다. 젠더역할 갈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여성이 관리직이나 운동선수 등 전통적인 남성 지배 직종에 진출할 경우, 여성에게 기대되는 젠더역할과 그 지위가 기대하는 남성적 젠더역할이 충돌하면서 심한 역할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여성 운동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여성은 의존성, 감성, 수동성을 함양하도록 젠더역할이 기대된다. 하지만 스포츠는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까닭에 순동선수에 대해 대체로 공격성, 독립성, 활동성이라는 남성젠더의 역할을 기대한다. 따라서 운동선수가 되고자 하는 여성들은 여성적 젠더역할의 상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위로부터 심한 만류를 경험하게 된다. 또 이를 극복하고 참가했다 하더라도 스포츠 활동의 젠더 특성들을 학습한다는 이유로 남성적이고, 여성적 아름다움을 상실했다는 오명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성 운동선수라 하더라도 주로 여성적 젠더역할이 요구되는 스포츠에 참여하는 경우는 젠더역할 갈등을 적게 경험한다(Eitzen & Sage). 체조, 싱크로나이즈, 피겨스케이팅과 같은 종목에 참여하는 여성은 육상, 축구, 배구, 농구 같은 종목에 참여하는 여성보다 많은 사회적 지지를 받는데, 이는 우아함, 균형, 유연성과 같은 능력이 순발력, 근력, 지구력과 달리 여성젠더에 적합하다는 지배적 젠더관념이 사회적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보다 적은 '사회활동 기대' 보다 많은 '가사노동 기대'를 받기 때문에 사회진출에 성공한 여성이라 하더라도 역할 갈등을 훨씬 많이 경험하게 된다. 기혼 운동선수라도 남성선수의 경우, 사회적으로 운동선수라는 직업정체성과 그것을 통한 성취가 기대되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 없이 기혼으로 선수행활을 해 나가는 반면 여성선수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기대 때문에 결혼 자체를 망설이게 되고, 결혼 후 선수행활을 지속하는 데 있어서도 심각한 역할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 참고자료 - 아줌마 운동선수, 아저씨였다면? (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 >
여자, 아내, 엄마, 운동선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역할 과잉'의 상태다.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빚쟁이에게 쫓기는 남편의 아내인 미숙(문소리 분)은 메달 포상금을 미리 받는 조건으로 핸드볼 국가대표팀에 합류한다. 태릉 선수촌 입성과 동시에 선수라는 새 역할을 떠안게 된 미숙은 아들 키우랴, 운동하랴, 쉬는 날엔 님편 찾으러 다니랴 정신이 없다.
선수시절 생리 조절을 위해 복용한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불임이 된 정란(김지영 분)은 공처가 남편 앞에서는 사랑스러운 천생 여자, 선수촌에서는 시비 거는 무리들을 일망타진하는 깡패 아줌마다.
혜경(김정은 분)은 감독으로 팀에 들어왔다가 이혼경력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선수 신분이 된다. "남자 감독이었어도 이혼경력이 문제가 됐을까요?"라고 항변해 보지만 소용없다. 신임 남자 감독의 방식은 자신의 스타일과 정반대라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당신은 더 이상 감독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새로 주어진 운동선수라는 역할은 그들이 갖고 있던 '아줌마' 역할과 갈등한다. 물론 그 갈등이 만드는 에피소드는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지만 선수 개개인이 짊어지는 역할갈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냥 팔자 사납게 태어났다고 체념해버려야 하는 걸까?
만일 그들이 '아저씨 선수'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됐을까? 아저씨라는 역할과 운동선수라는 역할의 갈등이 아줌마 선수의 그것과 같을까? 그들의 팔자로 그렇게 사납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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